중국출장
사실, 이제 중국에 다녀온 게 언젯적 일인지 흐릿합니다. 아무래도 출입국 관리기록이나 여권을 뒤적거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록을 남기려면 즉시 남겨야 되는 거겠죠.
제가 중국에 가게 된 것은 물론 여행 목적은 아닙니다. 출장이라면 출장일텐데... 과정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다른 2분만 갈 예정이었는데, 제가 따라 붙었거든요. 제가 왕복 교통비를 내고, 회사에서는 출장처리만 해 주었습니다. 약간의 자금지원도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원래 목적이 최신 측량 기술에 대한 교육이었고, 한 사흘정도의 시간동안 나름대로 이해를 높일 수 있었으니까요. 중국 구경요? 거의 못했습니다. 마지막날 오전에 자금성을 통과해서 걸은 것 외에는요.
거두절미하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2년이 넘었으니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아참, 사진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구입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갔었는데, 별로 많이 찍지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문서의 대부분이 그냥 글만 들어있을 겁니다.
2000년 월 일
김포공항을 통해서 나갔는지 인천공항을 통해 나갔는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2001년 3월에 인천공항이 개항되었으니 김포쪽이겠네요. ^^ 아무튼 나갔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시간이 꽤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는 중국국제항공공사 (Air China)이었습니다. 안내방송이 없었기 때문에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활주로에 들어서서 가속을 하다가 이륙하지 않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시도해서 이륙을 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마도 30-40분 정도는 지체되었습니다.
당시까지 만해도 Air China는 사고가 전혀 없었다고 했었습니다. (무려 46년 연속무사고운행이라고 하네요.) 2002년 4월 15일에 중국민항기가 김해공항에 착륙하려다가 인근 지내동 돗대산 정상에 추락해서 129명이 사망한 큰 사고가 발생했었는데, 그 때 중국에서 엄청 당황해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이륙과정에서 한참동안 지체되는 동안, 아무도 그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도 없었구요, (안내방송이 없어서 몰랐을 수도 있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안전을 위해 이륙을 늦췄구나... 우리나라 비행기였다면 일단 이륙하고 말았을텐데..’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관광단과 함께 중국에 갔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관광단에 끼어 출발하고 같이 돌아오는 것이 비용이 절감된다고 하더군요. 단체관광에는 이화원, 만리장성 등을 포함한 관광일정이 있지만, 우리 일행은 항공비와 숙박비만 해결한 셈입니다. (관광업체에서는 이런 것을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이 초현대식에 규모도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선족 안내인이 한 명 나왔습니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약 1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동안 중국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거의 기억이 없습니다.)
저녁엔 일행과 함께 호텔 부근에 있는 조선족 가게로 술을 마시러 갔습니다. 양꼬치와 이과두주를 마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5명이 양껏 먹었는데 5-6만원 정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과두주는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가격이 엄청 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나라 소주병보다 큰 병으로 100원-200원 정도였을 겁니다. 아무튼 술값은 전혀 부담이 안되었습니다.
양꼬치는 북경에서 처음 먹었는데, 저는 너무 맛있었습니다. 쇠꼬챙이에 양고기 조그맣게 썰은 것을 5개씩 끼워둔 것을 불 위에 구워서 독특한 건조양념을 찍어 먹는 것입니다. 그 건조양념이 톡쏘는 맛 포함... 정말 끝내줍니다. 아무튼 배부르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습니다. 가리봉 5거리 가리봉시장에 조선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는데, 북경보다야 비싸지만 그래도 저렴한 가격에 본토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찾아가시려면 2호선 대림역에 내려서 가리봉동 조선족거리라고 하면 데려다 줄 거구요... 도착해 보시면 한자로 된 간판들을 많이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羊串이라고 써있는 집 들어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건조양념 중에 한가지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서 중국에서 수입한다고 들었습니다.
2000년월일 - 2000년 월 일
이 기간은 교육받는 기간입니다. 날짜가 잘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일단 기억나는 것을 순서에 관계없이 적어볼까 합니다.
교육 내용은 제가 전공하고 있는 측량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진측량. 그 중에서도 수치사진측량(Digital Photogrammetry)입니다. 비행기에서 찍은 항공사진을 컴퓨터로 읽어들인 후, 이것을 입체로 보면서 땅위에 있는 여러 가지 지형지물의 좌표 및 속성을 입력하는 기술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일반화되어 있지 않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 방식으로 여러분이 주변에서 접하는 다양한 지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중국의 측량은 솔직히 말씀드려서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습니다. 무안측량대학인가 해서 측량만 가르치는 대학이 있을 정도입니다. 정원이 2,000명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측량분야 대학교수들도 유학한 사람이 많습니다. 측량분야는 유럽, 특히 독일이 세계적으로 제일 앞서 있는데, 독일에서 측량을 전공하는 사람의 1/10 이 중국유학생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로 유학을 다녀온 사람은 미국, 일본, 유럽 모두 합쳐서 2-30명 정도 될 겁니다. ㅠ.ㅠ
중국은 워낙 측량분야에서 할 일이 많다보니, 기술자도 많고 대우도 잘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기계를 자체적으로 제작해서 사용하고 있구요. (우리나라는 물론 100% 외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합니다.
특히, 우리가 방문한 회사(Supresoft)는 중국에서도 매우 앞서가는 회사입니다. 일본에서 발주하는 사업을 수주해서 작업하는 분량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일본보다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겠지만, 기술에 있어서는 일본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직원들 월급이 일반 중국인 노동자의 10배 이상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벤처붐이 사그라 들 때였지만, 그 회사는 벤처붐을 타고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라고 하던 기억도 납니다. 아... 그리고 겨울에 단체로 해외여행을 보내줄 거라고... 한국으로 온다고 하더니 결국엔 동남아로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구요.
아래는 교육받는 장면입니다. 교육은 일본어로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어를 하면 우리 동행중의 한 분이 우리말로 통역해주고... 제가 답답할 때는 영어로 물어봤었는데, 이해는 조금 하는 듯 했지만, 답은 일본어로 해주더군요.
2000년월일 점심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아마도 첫날이었을 겁니다. 정통 사천요리식당으로 갔습니다. 사진에서 원판 오른쪽에 있는 빨간 음식은 고추+쇠고기 볶음이었습니다. 엄청 매운 빨간 고추가 2/3 가량이고, 나머지가 쇠고기 였습니다. 고추로는 맛만 내고 쇠고기만 먹는 음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고추도 많이 먹었습니다. ^^) 사천요리가 매운 요리가 많다고 하더니 정말로 맵더군요.
점심시간에 갔던 사천요리
각 개인 앞에 놓여 있는 잔은 차(Tea)입니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국화꽃을 비롯해 여러 가지 꽃으로 만든 차였던 것 같습니다. 차에 물을 따르는 것이 아주 신기했습니다. 주둥이가 아주 긴 주전자에 물을 담아와서 물이 모자란 잔에는 계속 채워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 자리 옆으로 가서 따르는 것이 아니고, 한 자리에 서서 모든 사람 물을 다 따라 주었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주전자를 숙이면 물줄기가 만들어지면서 잔에 정확히 들어가고, 다 들어갔다 싶으면 딱 끊는데 거의 정확했습니다. 원래 오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따르면 물이 한 방울도 안 흐르는데, 우리에게 서빙한 친구는 나이가 별로 많이 안 들어 보이더니 물을 몇 방울 흘리더라구요.
아... 그리고... 주의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원래 중국에서는 음식을 남기는 것이 예의라고 들었습니다만... 맛있는 음식을 계속해서 먹어 다 떨어진다 싶으면 무조건 새 음식을 시킵니다. 같은 음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던 식사를 끝마치고 일어설 때에는 모든 접시에 반 이상이 남아 있게 됩니다. 한국식으로 음식을 깔끔히 비우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두시길...
우리가 간 회사의 부사장님은 이름이 손삥인데요, 일본어를 무척 잘합니다. 일본에 유학을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 회사가 일본 일을 많이 하고 있기도 하구요. 술이 말술... 정도가 아닙니다. 정말 술을 그렇게 마시는 사람을 처음 봤습니다. 보통 중국 고량주가 45도 이상이지 않습니까? 맥주병만한 고량주 병을 5병 이상 마시고도 끄덕 없었습니다. 끄덕 없는 정도가 아니고 그렇게 마시고선 우리를 호텔에 자기 차로 운전해서 데려다 주더군요.
축구대회
아마 두 번째 날인가 싶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CISCO란 회사와 축구시합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장소는 무슨 실내체육관이었습니다. 도착하였을 때가 6시쯤이었는데요, 직원들끼리 연습시합을 했습니다. 제가 모시고 있는 부장님도 참가를 했습니다. 우리 부장님은 독일 유학파인데요, 그래서 분데스 리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축구를 잘하십니다. 원래 운동도 좋아하시는 분인데다가 특히 독일이다보니 축구를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시합은 8시에 시작했습니다. 8시면 밥을 먹고 늘어질 시간인데, 그때서야 운동을 한다는 것이 저는 정말로 이해가 안됐습니다. 머...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만... 시합은 거의 일방적으로 CISCO가 이겼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장님이 골키퍼로부터 최전방까지 뛰어다니는 올라운드 플레이를 선보여서 우리쪽 회사 여직원들이 열광을 하더군요.^^
운동이 끝나고 나서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샤브샤브 비슷한 요리였습니다. 육수에 야채와 얇게 썰은 고기를 넣은 것은 동일합니다. 단지 소스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소스는 된장이더군요. 우리나라 된장과는 다른 맛이 났습니다. 머... 거기까지는 별문제 없었는데, 된장에다 녹색 잎을 넣더군요. 향이 아주 독특한 향료... 중국이나 동남아로 여행가신 분들은 한번쯤 고생하셨던 경험이 있을겁니다. ^^ 저는 그때가 처음이었는데요... 결국 소스는 포기했습니다.
이제 술 차례입니다. 물론 고량주입니다. 빼갈(白酒)가 되겠습니다. 중국사람들이 술을 많이 먹는 건 알았지만, 정말 그 정도인지는 몰랐습니다. 저만해도 4홉 들이로 한병 반은 먹은 것 같구요, 축구에서 인기를 온몸으로 받으신 우리 부장님은 3-4병을 마셨습니다. 물론 다른 일행들도 저만큼은 마셨구요. 머... 여직원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더군요. 우리식으로 노털카, 확인사살, 러브샷... 그담에 폭탄주까지 돌렸는데, 다들 전혀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꼭지가 풀려버렸죠. 아마도 12시가 넘어서 호텔로 돌아온 듯 싶은데요, 호텔 내부에서 내용물 확인까지 했습니다. 읔~~
아참, 그 회사에 이쁜 여직원들이 많았습니다. 그 것도 제가 필름이 끊긴 이유중의 하나였을 겁니다. 중국엔 얼굴이 동글동글한 여자가 많더군요... 딱 제 스타일입니다. ^^ 제가 제일 맘에 들어했던 아가씨는 부사장 비서였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하더군요.
다음날...
오전 교육동안 죽는줄 알았습니다. 숙취때문에요. 거의 아무 이야기도 안들리더군요. 잠시 회의실에 대피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은 한국식당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고춧가루는 멀거니... 거의 김치가 헤엄친 수준이었습니다. ㅠ.ㅠ
그 날 저녁엔 북경오리집으로 갔습니다. 제일 유명한 집이라고 했습니다. 근처가 공사를 하는 바람에 길을 잘 못 찾아 들어가는 바람에 도착해 보니 벌써 요리가 나오고 있더군요.
저는 그때 북경오리요리를 처음 먹었습니다. 껍질만 기름기가 약간 있을 뿐 먹을 만 하더군요. 껍질이 제일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때까지도 숙취가 남아있는 바람에 많이 먹지를 못했습니다. ㅠ.ㅠ
2000년 월 일
마지막 날입니다. 오후 비행기로 예약이 되어 있어서 오전이 시간이 있었습니다. 원래 이 날까지도 교육이 잡혀있었습니다만, 대충 보았기 때문에 오전에 관광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함께 출발했던 여행단과 합류를 했습니다. 마지막날 관광이 자금성이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아래 사진들이 여러개 있는데, 어떤 녀석이 처음에 찍은 건지, 나중에 찍은 건지 한 두 개 정도를 빼고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사진 파일명이라도 참고를 할 수 있어야 했는데, 제가 프린트하느라 파워포인트에 모아 둔 것만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마저 불가능합니다.
하여튼... 자금성이 엄청난 규모란 것만은 확실히 느꼈습니다. 우리는 그저 천안문쪽 입구에서 후원쪽으로 중심선을 따라 쭉 걷기만 했는데도 한시간 이상 걸렸던 것 같았으니까요. 외국 손님들을 데리고 우리나라 경복궁이나 창덕궁쪽을 구경시켜주곤 했는데, 이런 걸 보았던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실망스러웠을까... 싶었습니다. 방 개수가 9,999개 라고 했나요? 아무튼요.
게다가 날씨마저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느라 고생했습니다. 초여름이었는데도 날씨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그나마 우리가 갔을 땐 날씨가 조금 수그러들었을 때라고 했었는데, 그게 30도 이상이었으니까요. 하늘은 항상 뿌예서 태양이 있기는 있는데, 형태를 알아보기는 힘들었구요. 먼지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북경쪽에 관광을 가려면 가을쯤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봄은 황사 때문에 그렇구요... 겨울은 너무 춥다고 하고요.
몇 가지 기억나는 것만 적어 보겠습니다. 사신들이나 신하들이 황제를 만나던 곳이라고 하던 곳에서는 황제는 높은 곳에 있고, 다른 사람들은 낮은 곳에 있는데, 연기를 피워서 마치 황제가 구름위에 있는 것처럼 연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구요... 커다란 항아리(물항아리인지 잘 모르겠지만)에 금이 칠해져 있었는데, 일본군들이 긁어갔다는 이야기도 들었구요... 옥새가 엄청난 크기라서 내시 두 명 이상이 들고 찍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 정도로 마쳐야겠습니다. 정말 너무 오래되었고, 사진마저 별로 못찍어서... 글을 쓰려고 해도 전혀 기억이 안나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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