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kyung Kim, 강남대학교 중등교육연수(미학의 이해, 2009.8.5)
강남대학교 중등교육연수 / 2009.8.5(수)
미학의 이해
담당교수 : 김미경 (미술사학 박사)
강남대 교수/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 KARI 소장
http://blog.naver.com/rupinakmk
www.kaiart.lr
Ⅰ. 序
미학(美學/Aesthetics)이란 무엇인가?
그 수많은 갈래 중에서 대표적인 문제로 제기되어온 것은 미(美/beauty)와 예술(藝術/art)이다. 그것은 철학적인 방법이나 과학적인 방법으로 고찰되며, 이 시대의 미학은 크게 두 갈래로 대륙의 합리론적 흐름과 영국의 경험론적 흐름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감성적 인식의 학(學)-에스테티카(Aesthetica)
미학이라는 용어를 현재의 의미로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은 18세기 독일 라이프니츠볼프학파(Leibniz Wolffische Schule)의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그림1)에 의해서이다(1735).
그림1) 바움가르텐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처음으로 인간의 ‘감성’을 학문의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인간의 지성(知性)은 인식론에서, 인간의 의지(意志)는 윤리학에서 연구하는 가운데 인간의 감성을 연구하는 학문은 부재하던 상태였으나, 바움가르텐은 그때까지 이성적 인식에 비해 한 단계 낮게 평가되고 있던 감성적 인식에 독자적인 의의를 부여하여 이성적 인식의 학문인 논리학과 함께 감성적 인식의 학문도 철학의 한 부문으로 성립시키고, ‘감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에스테시스(Aesthesis)를 본떠서 에스테티카(Aesthetica)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미(美)란 곧 감성적 인식의 완전한 것을 의미하므로 감성적 인식의 학문은 동시에 미(美)의 학문이다’라는 그의 입장은 근대 미학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열었다. 그 에스테티카라는 용어는 지금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영어 에스테틱스(Aesthetics)가 되었고, 일본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 미학(美學)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Ⅱ. 감성의 문제가 대두하기 까지
1. 고대 플라톤(Platon)(BC 428/427-BC 348/347)을 대표로 하는 서구 전통 철학/미학은 초월적 가치로서의 미를 고찰해왔다. 그것은 현상세계와 단절된 것으로 현상은 그 ‘이데아 세계’에 해당하는 정신세계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데아 세계 形相/Idea 플라톤의 전제 ------------------------ 아포리아(aporiā)의 단절상태 현상세계
고전 미학은 미의 본질을 묻는 형이상학이므로 플라톤 사상의 경우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초감각적 존재로서의 미의 이념을 추구한다. 그것은 이념으로서 추구되는 미(美)이며, 인간의 감성적 인식에 의하여 포착된 현상으로서의 미(美)를 다룸으로써 ‘미적인 것(das Ästhetische)’을 대상으로 하게 된 근대 미학과는 달랐다.
2. 중세
중세 예술의 미학은 플로티노스(Plotinos)(205-269?)에서 유래한 ‘빛의 상징주의’로 전환기를 맞는다(그림2). 그러나 고대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에 해당하는 정신세계와 ‘현상세계’에 해당하는 물질세계를 날카롭게 대립시켰던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354-430)를 거쳐 중세 후반기인 고딕(Gothic) 시대에 이르면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의 관계에 대한 태도가 상당히 달라지는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1225?-1274)(그림3)의 철학은 물질세계를 소극적으로 무시하지 않고 신의 섭리를 실현하는 장(場)이자 ‘빛’의 통로로 연결된 것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고딕시대의 ‘자연주의’ 미술(그림4)은 그것을 반영한다.
신(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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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미학 세계 빛의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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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세계
그림2) 사르트르(Chartres) 성당 부조

그림3) 토마스 아퀴나스 그림4) 사르트르(Chartres)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

Abbey Church at St. Denis c.1136-40, Suger's choir with 13th c. additions
참조 : 빛의 상징주의
•스테인드 글라스 : 전통적으로 금속산화물을 녹여 붙이거나 표면에 안료를 구워서 붙인 유리조각을 접합. 기원은 7C경 중동지방 이슬람 건축에서 대리석 판에 구멍을 뚫어 유리조각을 끼워 채광과 장식을 겸하는 방식으로 사용
스테인드 글라스의 유럽교회 건축 적용 : 12C 프랑스 생 드니 교회당 재건(1137-1144)을 위해 수도원장 쉬제르(Abbot Suger)가 종교적인 근거를 통해 스테인드 글라스의 사용을 적극 추진
쉬제르의 논거 :
1) 하모니(즉 수학적 비례나 비율을 가진 부분 상호간의 완전한 관계)는 신(神)의 이성이 세계를 만들어 낸 법칙을 예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미(美)의 근원이 된다는 것
2)가장 성스러운 창을 통해서 내진에 가득 차는 기적과 같은 빛이 신의 거룩한 빛, 영혼의 신비스러운 계시가 된다는 것.
3. 17세기 바로크(Baroque)
중세 이후 다시금 고대의 정신을 부활시키려 했던 르네상스(Renaissance) 시기를 지나, 바움가르텐의 미학 사상이 대두되기 직전인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미술은 이성과 감성을 대립시키는 격렬한 논쟁의 시기였으며 이를 통해 분명해진 사실은 미적 취향(taste) 혹은 취미는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표적으로 고전적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프랑스의 바로크 화가 푸생(Nicolas Poussin)(그림5)과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북유럽 바로크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그림6)의 대립이 그것이다.
그림5) 푸생, <사비니 여인들의 약탈> 그림6) 루벤스, <묶여진 프로메테우스>
(The Rape of the Sabine Women), 1634-35 (Prometheus Bound), 1611-12
Ⅲ. 데카르트 정신에서 탄생한 근대미학
앞서 말한 것처럼 근대미학은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성의 하위 영역으로서 감성을 포섭하는 태도였다. 즉 감성도 일종의 이성으로 간주하고 그 위치를 확보하려 함으로써,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René Descartes)(1596-1650)(그림7)의 정신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이다. 바움가르텐에게 미와 예술은 어디까지나 감성의 일이지만 그 감성은 일종의 불완전한 이성인 셈이었다.
그림7) 데카르트 그림8) 칸트
판명(distincta) : 기하학
명석(clara) 논리학
혼연(confusa) : 미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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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obscura)
1. 미(美)의 자율성과 칸트
아주 오랫동안 미(美)는 선(善)이나 진(眞)에, 예술은 도덕이나 종교 또는 철학에 종속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즐거움’ 때문에 예술을 감상하는 경우가 많다. 칸트(Immanuel Kant)(1724-1804)(그림8)는 수 천년동안 진리나 도덕적 교훈을 주지 않는 예술을 타락한 것으로 간주하던 관습을 깨고, 오늘날처럼 자기 고유의 ‘자율성’을 갖는 예술 개념의 출발을 알렸다. 그는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Kritik der reinen Vernunft)(1781)에서 종래의 신(神)중심적인 형이상학의 개념을 인간중심적인 의미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18세기 영국의 취미론과 함께 예술가의 낭만적 태도와 관련되는 숭고(sublimity)나 풍려(picturesqueness)같은 개념을 낳음으로써 미적 가치의 범위를 확장시켰으며(그림9), 19세기 말-20세기 예술의 모더니즘(Modernism)의 성격의 근간을 이루게 했다.(그림10)(그림11)
그림9) 터너(William Turner), 그림10) 마네(Eduard Manet) 그림11) 세잔(Paul Cezanne), <불타는 국회의사당>, 1835 <풀밭 위의 식사>, 1863 <생 빅토와르 산>, 1904-1906
2. 헤겔로부터 비트겐슈타인으로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그림12)이 칸트 철학 전통의 관념론을 계승하며 존재자의 재현(representation)으로부터 존재의 현시(presentation)를 중요하게 간주했다면(그림13)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1889-1951)(그림14)은 일상 언어(日常言語) 분석에서 철학의 의의를 발견하게 된다.
그에게 철학은 이제까지처럼 ‘관념’을 다루는 것이 아니었으며, 관념을 완전히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으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관념의 본질은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결국 철학의 대상은 인간의 언어로 이루어진 언어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세계와 사물과 말의 관계를 탐색했다.(그림15)(그림16) 그림15)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꿈들의 열쇠>(La clef des songes), 1930 (중앙) 그림16)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 1930
3.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과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존재(Be)와 존재자(Being)는 다른 차원이다.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1927)에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976)(그림17)는 존재를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자인 인간(현존재/現存在)의 존재(실존/實存)가 현상학적 실존론적 분석의 주제가 되고, 인간(현존재)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관심’의 의미는 ‘시간성’으로서 확정된다. 여기서 존재는 개개의 존재자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각각 존재하게 하는 특이한 시간 공간인 것이다.
그림17) 하이데거 그림18) 사르트르 그림19) 세키네 노부오(關根伸夫), <위상-대지> (位相-大地), 1968 / 이우환, 『존재와 무를 초월 하여-세키네 노부오론』(1969) 관련 그런데 『존재와 무(L'etre et le neant)』(1943)를 쓴 사르트르(Jean-Paul Sartre)(1905-1980)(그림18)는 후설(Edmund Husserl)(1859-1938)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의 영향을 받았으나 무신론적 실존주의로서, 절대적 존재이자 스스로 충족하는 물(物)의 세계인 즉자(卽自/ensoi)와 그것을 통해서 ‘존재의 무화(無化)’가 세계에 도래하는 특수한 존재로서의 인간인 대자(對自/pour-soi)와 시간성 속의 타자(他者)인 대타(對他/pour-autrui)의 관계를 탐색했다.(그림19)
Ⅳ. 이후 : 포스트모던(Post Modern)
인간의 욕망을 분석했던 라캉(Jacques Lacan)(1901-1981)과 리오타르(Jean Paul Ryotard), 들뢰즈(Gilles Deleuze)(1925-1995) 및 『언어와 사물』(1966)을 쓴 푸코(Michel Paul Foucault)(1926-1984)와 ‘차연’ (differance)의 개념을 말한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1930-2004)의 해체이론 등 주로 후기구조주의자들의 사상이 풍부한 포스트모던 미학은 근본적으로 근대정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넘어서는가에 집중된다. 그것은 본격적으로 근대의 철학/미학이 이루어 온 체계로서의 동일성과 일원성을 중요시 하지 않으며 그 해체와 다양성을 주장한다. 근대미학에서 암시되기 시작했듯이 예술은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에 근거하며 어떤 예술도 동일한 원리에 의해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시도 대신 의미와 차이를 드러내려고 한다. 후기현대미학의 상황은 탈 중심과 탈 이데올로기, 해체와 차이, 주체와 타자의 재인식 등을 탐색하는 중이다.

그림12) 헤겔, 1831 그림13) 반 고호(Vincent Van Gogh), <구두>, 1886
그림14)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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